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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1 | 701 | 10시, 딮스마르크는 사실상 떠 있는 강철 묘지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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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3 | 703 | ==== 해전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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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4 | 딮스마르크가 침몰하면서, 퇴함 지시에 따라 수백 명의 생존자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대부분이 부상이나 화상을 입었고, 흘러나온 기름 때문에 온몸이 기름투성이였다. 바닷물은 섭씨 13도로 매우 차가웠고, MVR 도리엔스가 처음으로 구출하러 올 때까지 약 1시간을 버텨야 했다. 도리엔스의 함장 카를루 마르티니 대령은 밧줄을 내려 구조를 시도했지만, 딮스마르크 승조원들이 너무 지쳐 있어 사다리까지 내려주어야 했다. 이어 구축함 MVR 마르디도 구조에 가세했다. 이들은 유나코 대위를 포함한 승조원 110명과 수상기 정비병 에르네스토 카도비 공군 상병 1명, 총 111명을 구조했으며, 이 중 게라르도 루티치 기관일병은 구조 후 사망했다. 도리엔스가 86명을 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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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6 | 그러나 도리엔스의 견시가 잠망경을 보았다는 보고를 올렸고, 마베라 해군은 이미 유보트 전개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알았지만 배짱으로 들이대 딮스마르크를 제압했다.] 즉시 철수해야 했다. 실제로 본 것이 U-74의 잠망경이었는지, 아니면 잔해였는지는 지금도 불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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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8 | 바다에 남겨진 이들은 그날 저녁 19시 30분~20시 20분 사이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U-74가 3명을 구조했다. 더 구조하려 했으나 항공기 출현과 뇌격 위협으로 잠항해야 했다. 22시 30분에는 기상함 노르트발트가 와서 2명을 추가로 구조했다. 나머지 생존 희망자들은 저체온증 등으로 사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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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0 | ||<tablealign=center><tablewidth=800><tablebordercolor=#536349,#333333><tablebgcolor=white,#1f2023><nopad> [[파일:비스마르크 전사자 장례식.jpg|width=1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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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1 | ||<rowbgcolor=#536349,#222222><rowcolor=white> 아직 안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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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2 | 인근 해역을 수색하던 스페인 해군 중순양함 SNR 카스티야도 생존자를 구하지는 못했고, 대신 시신을 수습해 함상 장례를 치렀다. 최종적으로 딮스마르크 승조원 2,200여 명 중 115명이 생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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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4 | 구조된 110명의 전쟁포로는 마베라 본토로 압송되었고, 일부 장교는 마베라 해군의 심문을 받았다. 1942년에는 캐나다의 포로수용소로 이감되었고, 1946년에 석방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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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6 | 한편 딮스마르크의 마스코트이자 함재묘였던 검은 고양이 한 마리는 비언 제독의 기함 구축함 MVR 코르세카에 구조되었고, 이후 ‘오스카(Oskar)’(별명 Unsinkable Sam)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명은 불명이었고, 선상 인명구호 구호인 ‘Man Overboard’를 빗대 독일식 이름 오스카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후 코르세카가 침몰한 뒤 다시 구조되어 항공모함 MVR 아우리온의 함재묘로 재고용될 때 ‘샘(Sam)’으로 개명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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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8 | 이 고양이는 웨스타시아의 전함 딮스마르크, 마베라의 구축함 코르세카, 항공모함 아우리온을 차례로 ‘경험’했고, 세 함정 모두 침몰했다. 세 번의 침몰 이후 미신을 중시하는 뱃사람들에 의해 쉽캣에서 해고되어 지브롤터 총독 관저에서 지냈으며, 그 사이 MVR 풀미네(아우리온 생존자 구조)와 MVR 레지오네(코르세카 생존자 구조)도 침몰하자, 총독은 불운이 지브롤터로 옮겨붙기 전에 그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마베라 해군 기지로 보내기로 결정했고,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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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0 | 웨스타시아 서부 해역 사령부는 딮스마르크의 침몰을 즉시 알지 못했고, 로이터 통신이 마베라 측 발표를 인용해 침몰 소식을 전할 때가 되어서야 사태를 파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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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2 | 마베라 하원은 딮스마르크가 침몰한 지 몇 시간 후 이른 오후에 군으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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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4 | 며칠 뒤인 6월 1일, 단독 행동 중이던 순양함 프린츠 엘데른이 유고랜드 항에 무사히 입항하며 ‘라인 연습’ 작전은 종료되었다. 무선 봉쇄로 딮스마르크의 침몰을 몰랐던 헬모 브린치니 대령과 승조원들은, 입항 후 비보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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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6 | 에리코 레데리가 상신한 아달베르토 슈나이데리 소령의 기사십자 철십자장 수여는 실제로 승인되었다. 다만 함장 프리드리히 캠퍼 대령의 기사십자 철십자장 수여는 7개월 뒤에야 이뤄졌고, 후임이 먼저 서훈을 받은 탓에 약간의 논란을 낳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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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04 | 727 | ==== 웨스타시아 공군의 보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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